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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Taegukgi: The Brotherhood of War (태극기 휘날리며)

진진바라바라 2018. 10. 26. 17:10

Taegukgi: The Brotherhood of War

(태극기 휘날리며) 

그 때를 기억하며
학교 삼촌은 우리집 삽짝 앞에서 형님은 길건너 큰집 대문앞에서서 서로들 돌맹이를 던지며 위험한 작난을 하고 있는 가운데 어린 내가 뛰어 놀다 돌에 맞아 이마에서 피가 나 삼촌과 형님이 어른들로 부터 많이 혼난 적도 있었다. 
 
학교 삼춘과 형님은 마당에서 놀다가도 다서 여섯살 된 나의 두 귀를 잡고 번쩍 들어 올리며 서울보이냐! 안보이냐! 보인다고 해야 내려 준다. 귀가 아파 눈물을 글썽이며 울기도 많이 했든 기억이 어렴풋 하다. 
 
1950년 6.25사변이 나든해 7월 내 고향 황간에서는 벼논매기가 한창이였지, 어른들은 벼 논매기를 하다가도 포성이 나는 북쪽 하늘을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허리를 잠시  펴곤 하였다. 그남밤 포성소리에 혼이난 어른들은 다음날 아침 약속이나 한듯 모두들 피난 봇짐을 쌋다 
 
내 나이 열살, 아버지가 36세, 첫째(在泓)삼촌의 나이 26세로 지난해 늦가을에 결혼 했다. 둘째 삼춘(在夏)이 21세로 미혼이였고, 셋째 학교 삼촌(在一)과 형님(相鉉)의 나이 18세 동갑으로 중학교 4학년인가?이였다.
셋째 막내 삼춘은 학교를 다닌다고 해서 늘 학교 삼촌이라 불럿다.
그리고 형님의 나이는 어리지만 종손이라 孫을 보기 위해 일찌기 장가를 들인걸로 기억하고 있다 
 
대구 피난지에서 학교 삼춘과 형님은 어느날 들이 닥친 불심검문에 학도병으로 입대 대구 달성 초등 하교에서 딱 일주일 훈련 받고 팔공산 전투에 투입되면서 군용차량을 타고 가는 학교 삼춘을 배웅한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집에서 운송사업을 하며 자동차 운전을 하든 둘째 삼춘은 전쟁통에 자동차가 징발되어 자동차와 같이 공군 수송부대에 자동 입대 공군상사로 재대 하였다. 
 
첫째 삼춘(在泓)은 피난 갓다와 53년에 징집되어 막바지 전투가 한창일때 한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 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용케 살아 남아 휴전이후 제대 했다. 
 
초등 학교에 다니든 나는 그때 전장터로 가는 장병들을 매일 같이 역에 나가 태극기 흔들며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노래 부르며  전송을 했고 가족들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자식을 부등켜 안으며 눈물로 동네 아저씨 형 동생을 전장으로 보내야만 하는 것이 일상이였다


 

https://www.youtube.com/embed/Vqb_DzL8xmw


출처 : 산수간애 "山水磵 愛 "
글쓴이 : 꽹과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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