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 살던 거미류의 조상은 육지로 올라와 육상생활에 적응했다. 이후 거미 대부분이 육상 생활을 하고 있지만 물거미는 다시 물 속으로
되돌아간, 즉 역진화한 거미로 추정된다. ‘세계 생물 종 다양성에 관한 협약’ 이후, 세계적으로 자국의 생물 주권이 인정되는 추세인 지금
우리나라에 서식하며 세계적으로도 희귀하고 독특한 생태를 지닌 물거미의 보전 및 보호가 절실하다.
세계적인 희귀 거미

굴뚝거미과에 속하는 물거미Argyroneta aquaeica (Clerck)는 우리나라에 사는 거미 중 유일하게 물속에서 산다. 우리나라
물거미에 대한 최초 보고는 아쉽게도 1955년 일본 학자에 의한 것이었지만 정확한 채집지 및 채집자가 알려지지 않아 거미연구가들을 애태웠던
종이다.
물거미가 유럽과 러시아를 거처 몽고, 중국 그리고 일본에도 살고 있었기에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에도 살 가능성이 많아 수차례 물거미 탐사가
시도되었지만 발견되지 않다가 보고된 지 40년이 지난 1995년 한 초등학교 교사가 수서생물인 볼복스를 조사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해 다시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거미학자들에게는 큰 기쁨이자 경사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적 희귀종인 물거미가 사는 장소는 한국과 일본의 거미학자들이 추측했던 중소형 둠벙이나 소형 저수지가 아닌 자연 늪지였다.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군부대 훈련장으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자연적으로 늪이 형성된 곳이다. 이곳에는 기장대풀, 차풀, 조개풀, 여뀌 등 국내종과
고추나물, 돼지풀, 미국쑥부쟁이 등 귀화식물 16종을 포함해 총 110여 종의 식물이 조사된 바 있다(장, 1999). 또, 물거미의 생존과
관련 많은 수서곤충을 크게 세 가지, 피식성(prey : 물거미의 먹이가 되는 종류), 잠재적 피식성(potential prey : 물거미와
먹이 경쟁관계지만 물거미에게 먹힐 수도 있 종류), 포식성(predation : 물거미를 잡아먹는 천적)으로 나누어 조사한 결과, 피식성으로는
하루살이, 실잠자리류 등 16종이, 잠재적 피식성에는 소금쟁이류, 파리류 등 9종이, 그리고 포식성으로는 물자라, 게아재비, 장구애비 등 4종이
조사되었고(노, 1999), 그 외에도 조류와 포유류도 있었다. 하지만 물거미 서식지가 천연기념물(제 412호)로 지정되기 바로 이전의 조사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바로 올챙이를 포함한 개구리들이었다. 처음 조사할 때보다 개체수가 눈에 띄게 늘어 물거미 생존에 가장 큰 위협요인일
것으로 생각된다.
물거미의 주거 공간 공기주머니집
오래전 물거미 생태관찰을 위해 현지조사와 함께 채집해 수조에서 사육한 일이 있다. 현지 생활 조건처럼 꾸며주기 위해
현장에서 먹이와 수초를 구해오기도 했고, 관찰의 편의를 위해 인공 수초를 이용하기도 했다.
일생의 거의 전부를 물속에서 지내는 물거미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공기주머니집이다. 공기주머니집은 먹이를 먹고, 허물벗기를
하며, 짝짓기와 산란을 하는 중요한 장소로 물거미의 생존 전략을 엿 볼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물거미가 공기주머니집을 지을 때는 먼저 수면으로 올라가는데, 수초나 자신이 쳐놓은 거미줄을 이용해 올라가다가 첫째다리가 수면에 닿으면 바로
자세를 바꾸어 실젖을 수면 위로 내밀고 순간적으로 공기방울(크기 약 1.0×1.2㎠)을 만든다. 배와 다리로 공기방울 운반해 지면이나 수초
사이에 붙이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몸보다 약간 큰 공기주머니집을 만든다. 공기주머니집은 개체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10~15분 정도면 완성하고,
너무 크면 부력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를 수도 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크게 만들지 않는다.
공기주머니집 역할

공기주머니집은 용도에 따라 수면 부근, 물 속 바닥 부근, 그리고 주변의 지형과 지물을 이용해 만드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알집에서 바로 나온 새끼들은 바로 수면으로 올라가 공기방울을 만들고 수면 근처 바로 아래에 공기주머니집을 만든다.
새끼들은 아직 사냥이나 공기주머니집 만들기가 서툴기 때문에 공기를 쉽게 확보할 수 있고 이동거리가 짧은 곳을 택하는
것이다. 새끼는 이미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동이 어려운 물 속 바닥보다 수면 근처가 유리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는 것 같다.
반면에 어느 정도 성숙한 물거미들은 물 속 수초의 중간, 바닥의 수초나 돌과 흙 속, 인공 수초나 산소 공급을 위해 설치한 호스나 구조물,
그리고 심지어는 물달팽이를 잡아먹고 그 속에 공기주머니집을 짓기도 했다. 관찰 결과 다 자란 성체의 공기주머니집은 1.5×2.3㎠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공기주머니집의 비밀
거미줄은 대부분 여러 종류의 단백질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섬유질의 주성분인 글라이신, 알라닌, 트레오닌 등은
결합력이 강하며, 강도 및 신축성이 뛰어나다. 물거미의 공기주머니집 역시 일반 거미줄과 같은 단백질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결합력이 더
강하고 탄력이 뛰어나다. 따라서 물거미 공기주머니집은 물에 녹지 않으며, 잘 터지지도 않는다. 간혹 물거미가 공기방울을 가져와 공기주머니집을
크게 만들려고 하다가 공기방울 놓치는 경우도 있고, 공기주머니집이 너무 커서 부력을 못 이겨 일부가 떨어져 나가 수면으로 올라갈 때도 있다.

거미줄을 이용해 이동
물거미는 어느 정도 유영이 가능하지만 수초를 타고 오르내리거나 자신이 수면과 바닥 사이에 세로로 쳐 놓은 거미줄을 이용해 이동한다. 세로로
된 거미줄은 빠른 이동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잡은 먹이의 임시 보관 창고로도 쓰고, 유영하는 먹이를 잡는 먹이그물로도 활용한다.
또 물거미가 바닥을 돌아다닐 때는 다리로 기어 다니지만 바닥에 거미줄을 처 놓고 이것을 밟고 다니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더 빨리 이동할
수 있고, 균형을 잃어 물 위로 떠오르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물거미가 유영이 가능하고 물에 젖지 않는 이유
모든 거미들과 마찬가지로 물거미 몸에는 미세한 많은 털들이 많이 나 있다. 이 털들로 몸이 물에 젖는 것을 막으며, 또 물거미가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여 몸에서 분비되는 유액을 온 몸에 자꾸 바르기 때문에 물에 젖지 않는다.
물거미의 사냥 및 먹이 먹기
물거미는 주로 물 속을 유영하거나, 물 속의 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수초 사이에 은신해 있다가 먹이를 사냥한다. 사냥한 먹이를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기주머니집이 필요한데, 이미 공기주머니집이 만들어져 있다면 잡은 먹이를 물고 들어가 먹이를 먹지만, 불행하게도 공기주머니집이
없다면 재빨리 만드는 게 상책이다. 어떤 녀석은 사냥한 먹잇감을 엄니로 물고 공기주머니집을 짓는가 하면, 어떤 놈은 자신이 처 놓은 세로줄에
먹잇감을 매달아놓고 만들기도 한다.
다행히 공기주머니집을 빨리 완성해 먹이를 먹을 수도 있지만 거미줄에 매달았던 먹이를 다른 녀석에게 빼앗기기도 한다. 먹잇감도 지키고
공기주머니집도 빨리 만들기 위해서는 공기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수면 근처에 공기주머니집을 짓는 센스도 필요하다.
물거미는 먹이를 공기주머니집에 끌고 들어와 문단속을 하고, 먹이에 독액을 주입해 꼼짝 못하게 한 후 소화액을 천천히 주입하면서 소화되기를
기다린다. 먹이의 몸 속에서 소화가 다 이뤄지면 천천히 그 소화액을 빨아 먹는다.
물거미의 호흡 방법
물거미는 물고기처럼 아가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사는 거미들과 같이 기관숨문과 책허파라는 기관으로 호흡한다. 따라서 공기주머니집이
없다면 숨을 쉴 수 없다. 간혹 물거미가 공기방울을 달고 유영하다가 공기방울을 놓치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바다 속에서 산소통을 잃어버린
다이버의 신세나 마찬가지로 물거미가 난감해 하는 것을 보고, 혼자 웃은 적도 있다. 물거미는 배에 공기방울을 매달고 다니는데 이것은 모든 거미와
마찬가지로 기관숨문과 책허파가 배에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기관이 없는 머리가슴에는 공기방울이 없다.
물거미도 지상호흡을 하는 일반 거미류와 같은 구조이기 때문에 육상생활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브리스토우의 진화론에 따르면 물거미는
지상에서 생활하다가 그 지역이 수몰되면서 수중생활에 맞게 적응했다고 한다. 실제로 물거미는 물 속에서 일생을 살지만 실내 사육 중 수면 위에서
허물을 벗거나 공기를 주입하는 공기호스를 타고 나와 쉬는 것을 보았다.
물거미의 사랑과 살아남기

물거미는 주로 여름에 짝짓기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짝짓기는 성숙한 수컷의 수염기관인 더듬이다리를 암컷의
외부생식기에 대고 정액을 전달함으로서 이뤄진다. 짝짓기 전에는 암수가 단독생활을 하다가 짝짓기를 하고나면 함께 생활 하는데, 이는 알을 낳는
산실(공기주머니집)을 보다 더 크게 만들고, 자신들의 새끼를 보호하려는 모성애와 부성애 때문이다.
알을 낳을 때의 공기주머니집 내부구조를 보면, 알을 낳아 보호하는 위쪽과 암수가 기거하는 아래쪽 두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물거미가 한 번에 낳는 알 수는 약 50개며, 낳은 지 3주 정도 지나면 알을 깨고 새끼거미들이 빠져 나온다. 물거미는 7회 정도
허물벗기를 하며 성장하며, 수면 위에서의 허물벗기는 보통 1~2시간이 소요된다. 물 속이나 진흙 속에 만들어 놓은 공기주머니집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따듯한 봄이 되면 성숙해져 짝짓기를 한다.
지금까지 물 속에서 살아가는 물거미의 생존 전략을 알아봤다. ‘세계 생물 종 다양성에 관한 협약’ 체결 이후, 자국에 대한
생물주권이 인정되는 추세이므로 우리나라 종에 대한 보호와 보전이 절실한 상황이다. 경기 연천의 물거미 서식지가 천연기념물로 이미 지정되었지만,
실내 사육법 확립 및 증식 등 지금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물거미 보호와 보전에 힘써야 한다. | 글·사진
이영보(농업과학기술원)
<월간 '자연과 생태'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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